<비만을 부르는 설탕 중독 사회>

<비만을 부르는 설탕 중독 사회>

 

보이지 않는 설탕

100일 동안 설탕을 비롯한 감미료를 일체 먹지 않는 ‘슈거 프리(sugar free)’캠페인을 벌인 한 환경단체가 있었다. 당시 한 참가자는 캠페인이 시작된 후 장을 볼 때 늘 식품성분 표기를 꼼꼼히 살폈다고 한다. 그런데 설탕을 비롯해 인공 감미료가 들어 있지 않은 식품은 거의 없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설탕 대신 단맛을 내는 양파와 사과를 넣어 요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한 단맛에 익숙해진 혀는 계속해서 단것만 찾아서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느꼈다고 한다. 식사량을 줄이거나 운동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캠페인을 마친 후 그의 체중은 4kg이나 줄어 있었다.

우리는 설탕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에는 과일이나 곡식을 통해 당분을 제한적으로 섭취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각종 가공식품을 습관처럼 먹으면서 엄청난 양의 설탕을 소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 해 설탕 소비량을 약 26kg정도이다. 이는 설탕을 가득 채운 1L짜리 페트병 26개를 먹는 셈이다(설탕 1L=설탕 1kg).

 

달콤함 이면의 잔혹사

설탕의 근원지는 인도이다. 사탕수수를 이용해 처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를 세계적으로 전파한 사람들은 아랍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동양에서 들여온 설탕을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 팔며 틈틈이 교역을 해 나갔다. 이후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유럽 사회에서 설탕이 본격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유럽의 귀족들은 설탕을 향신료로 이용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왕족과 소수의 귀족들만 설탕을 가끔씩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15~16세기 유럽 열강들이 신대륙에 식민지를 경쟁적으로 개척하면서 설탕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신대륙의 넓은 땅은 온통 사탕수수 밭으로 만들어 대규모 설탕 생산 및 판매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흑인 노예들의 불행도 함께했다. 유럽의 무역상들은 서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타국의 사탕수수의 농장에 팔아 넘겼다. 흑인 노예들은 하루 20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을 견디다가 채 몇 년을 살지 못하고 죽어 갔다. 훗날 미국의 노예 해방 선언으로 흑인들의 시민권이 보장되었으나, 설탕 농장 주인들은 여전히 흑인들을 이용해 설탕을 대량 생산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왕족과 귀족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도 먹는 시대가 찾아왔지만, 그 뒤에는 흑인들의 잔혹한 노동이라는 이면이 존재했던 것이다.

 

핏속으로 성급하게 ‘풍덩’-

우리 몸의 소화 과정에는 기계적 소화와 화학적 소화가 있다. 기계적 소화는 물리적인 운동을 통해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것이고, 화학적 소화는 소화 효소를 이용해 물질의 성분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녹말로 이루어져 있다. 녹말은 인간과 동물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의 종류로, 포도당 여러 개가 사슬로 연결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녹말은 우리 몸 안에서 어떻게 소화될까?

분류 특징
다당류 여러 개의 단당류가 결합한 것으로 물에 녹지 않음. 녹말,

글리코겐

이당류 단당류 2개가 결합된 당으로 물에 녹고 단맛이 나며 흡수가 빠름. 엿당, 젖당,

설탕

단당류 탄수화물을 구성하는 기본단위. 물에 녹고 단맛이 나며 더 이상 분해되지 않음. 동물의 혈액 중에 0.1%정도 함유돼 있으며, 흡수가 매우 빠름 포도당,

과당

녹말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오면 위와 소장 등 각종 소화 기관에서는 효소를 분비한다. 이 소화효소들은 포도당을 연결하고 있는 긴 사슬을 단계적으로 끊어, 다당류였던 녹말을 최종적으로 단당류인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일을 한다. 침과 이자액 속에 들어 있는 아밀라아제는 긴 사슬을 이당류의 일종인 엿당으로 분해하고, 이자와 소장에서 분비되는 말타아제는 엿당을 포도당으로 분해한다.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포도당은 소화관에서 모세 혈관 속으로 흡수된다.

우리 몸에 들어온 녹말은 여러 단계의 소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처럼 다당류 상태에서 포도당이라는 단당류 상태로 바뀌어 혈액 속에 흡수된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정제된 하얀 설탕을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이당류 상태로, 다당류에 비해 몸에 흡수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따라서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장 운동이 줄고 변비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혈당의 교란

많은 양의 당분이 혈액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몸의 혈당 수치는 높아진다. 이때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해 혈액 속의 포도당을 체지방에 저장시키도록 한다. 그런데 단 음식을 지속적으로 너무 많이 먹게 되면 혈류 속 당분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부족해진다. 결국 이런 상태가 유지되면 당뇨병이 생기게 된다.

반면 인체에서 인슐린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혈당 수치가 급락하게 되는데, 이로써 ‘저혈당증’에 빠지게 된다. 저혈당 상태에 놓인 몸은 혈당수치를 되돌리기 위해 더 많은 설탕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다시 혈당을 치솟게 만든다. 이로 인해 췌장은 자극을 받아 더 많은 인슐린을 보내고 더 많은 당분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췌장이 혈당 수치를 정확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혈당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인슐린 분비가 교란되면서 고혈당과 저혈당 사이를 난폭하게 오가는 신세가 된다. 과도한 설탕 섭취는 이러한 ‘혈당 고장’을 일으킨다. 설탕 100g은 칼슘 3mg, 철 0.2mg 등 극소량을 제외하면 99.9%가 당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탕수수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단백질, 지방, 섬유질, 비타민 등이 모두 없어지기 때문이다.

 

설탕 중독 사회

설탕 중독에 의한 부작용으로는 당뇨병과 비만, 우울증 등이 알려져 있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과도한 설탕 섭취는 인슐린 분비에 교란을 일으켜 당뇨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설탕에 들어있는 과도한 열량은 비만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설탕은 일부 호르몬에 영향을 주어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설탕 중독은 전 세계적으로 비만 사회를 불러오고 있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비만이 심하다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건강식과 다이어트에 돈을 투자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질 낮은 가공식품을 섭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개발 도상국의 도시 빈민 계층에서 비만율이 상승하고, 동남아시아와 중동 등에서 암이나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이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도 저소득층 청소년의 비만율이 고소득층보다 높은 실정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비만세를 부과해 식생활 개선에 시도하고 있다 헝가리는 당분과 나트륨, 포화 지방이 많이 함유된 식품과 청량음료에 개당 약 55원의 비만세를 부과하고 있고, 미국 뉴욕주도 청량음료에 특별 소비세를 부과하려고 추진 중이다.

물론 설탕 자체가 근원적인 악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극적인 단맛에 길들여지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개발 도상국의 싼 노동력을 이용해 몸집을 키워가는 설탕 산업, 그리고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식품을 내다 파는 가공식품 산업 등 현대 식품 체제의 중심에는 설탕이 있다. 어쩌면 설탕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설탕 과잉 섭취를 방치하는 사회 시스템이 설탕 중독 사회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유승운